번리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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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번리 FC는 1882년 창단된 잉글랜드의 프로 축구 클럽으로, 터프 무어를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 1920-21, 1959-60 시즌에 1부 리그(구 풋볼 리그 1부)에서 우승했으며, 1913-14 시즌 FA컵 우승, 1960년 FA 채리티 실드 우승을 기록했다. 2020년 미국의 ALK Capital에 인수되었고, 2022-23 시즌에는 EFL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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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리 FC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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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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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 번리 축구 클럽 |
별칭 | 클라레츠 (The Clarets) 롱사이더스 (Longsiders) 랭커셔의 자존심 (The Pride Of Lancashire) |
창단 | 1882년 5월 18일 |
홈 구장 | 터프 무어 |
수용 인원 | 21,944명 |
소유주 | ALK 캐피탈 LLC |
회장 | 앨런 페이스 |
감독 | 스콧 파커 |
리그 | EFL 챔피언십 |
웹사이트 | 번리 축구 클럽 공식 웹사이트 |
클럽 색상 | |
색상 | 적자색, 하늘색 |
2024-25 시즌 | |
시즌 | 2024–25 번리 FC 시즌 |
이전 시즌 | |
2023-24 시즌 순위 | 19위 (2023-24) (강등) |
2. 역사
번리 FC는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를 달성한 명문 구단이다. 2008-09 시즌 칼링컵에서는 아스널을 꺾기도 했다. 같은 시즌 풋볼 리그 챔피언십 5위를 기록, 2009년 5월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34년 만에 1부 리그에 복귀했다. 2009-10 시즌 2라운드에서는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하는 등 초반 홈 경기에서 압도적인 강세를 보였지만, 점차 부진하여 시즌 도중 오웬 코일 감독이 볼턴 원더러스로 떠났고, 홈에서도 대패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한 시즌 만에 강등되었다.
2012년 9월 숀 다이치가 감독으로 취임하여 2013-14 시즌 챔피언십 2위를 차지, 5시즌 만에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달성했다. 그러나 2014-15 시즌 19위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2015-16 시즌 EFL 챔피언십에서 한 경기를 남겨두고 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복귀를 확정했다.[161] 2017-18 시즌에는 숀 다이치 감독 아래 프리미어리그 7위로 약진했고, 2018-19 시즌에는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UEFA 유로파 리그 예선에 참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올림피아코스에 패해 본선 진출은 실패했다. 2020-21 시즌 리그 18라운드 리버풀전에서 1-0으로 승리, 리버풀의 리그 홈 68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깼다.
2022년 4월 숀 다이치가 해임되었으나,[162] 효과는 없었고 2021-22 시즌 18위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2022년 6월 14일 RSC 안데를레흐트를 이끌던 뱅상 콤파니가 감독으로 취임, 2022-23 시즌 개막부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14라운드부터 선두를 질주, 4월 7일 미들즈브러전 승리로 7경기를 남겨두고 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복귀를 확정했다. 4월 25일 블랙번전 승리로 2경기를 남겨두고 EFL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했다.[163]
다음은 번리 FC의 역대 리그, FA컵, EFL컵, FA 커뮤니티 실드, 유럽 클럽 대항전/기타, 최다 득점자 기록을 정리한 표이다.
시즌 | 리그전 | FA컵 | EFL컵 | FA 커뮤니티 실드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최다 득점자 | ||||||||||
---|---|---|---|---|---|---|---|---|---|---|---|---|---|---|---|---|
디비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순위 | ||||||||
1995-96 | 디비전 2 | 46 | 14 | 13 | 19 | 56 | 68 | 55 | 17위 | 1회전 탈락 | 2회전 탈락 | 풋볼 리그 트로피 | 8강 탈락 | 커트 노간 | 26 | |
1996-97 | 46 | 19 | 11 | 16 | 71 | 55 | 68 | 9위 | 3회전 탈락 | 2회전 탈락 | 2회전 탈락 | 폴 반스 | 25 | |||
1997-98 | 46 | 13 | 13 | 20 | 55 | 65 | 52 | 20위 | 1회전 탈락 | 2회전 탈락 | 준결승 탈락 | 앤디 쿡 | 20 | |||
1998-99 | 46 | 13 | 16 | 17 | 54 | 73 | 55 | 15위 | 1회전 탈락 | 1회전 탈락 | 1회전 탈락 | 앤디 페이턴 | 23 | |||
1999-00 | 46 | 25 | 13 | 8 | 69 | 47 | 88 | 2위 | 4회전 탈락 | 1회전 탈락 | 1회전 탈락 | 앤디 페이턴 | 27 | |||
2000-01 | 디비전 1 | 46 | 21 | 9 | 16 | 50 | 54 | 72 | 7위 | 3회전 탈락 | 2회전 탈락 | 앤디 페이턴 | 15 | |||
2001-02 | 46 | 21 | 12 | 13 | 70 | 62 | 75 | 7위 | 4회전 탈락 | 1회전 탈락 | 개러스 테일러 | 16 | ||||
2002-03 | 46 | 15 | 10 | 21 | 65 | 89 | 55 | 16위 | 8강 탈락 | 4회전 탈락 | 개러스 테일러 | 17 | ||||
2003-04 | 46 | 13 | 14 | 19 | 60 | 77 | 53 | 19위 | 5회전 탈락 | 3회전 탈락 | 로비 블레이크 | 22 | ||||
2004-05 | EFL 챔피언십 | 46 | 15 | 15 | 16 | 38 | 39 | 60 | 13위 | 5회전 탈락 | 4회전 탈락 | 로비 블레이크 | 13 | |||
2005-06 | 46 | 14 | 12 | 20 | 46 | 54 | 54 | 17위 | 3회전 탈락 | 3회전 탈락 | 아데 아킨바이 | 14 | ||||
2006-07 | 46 | 15 | 12 | 19 | 52 | 49 | 57 | 15위 | 3회전 탈락 | 1회전 탈락 | 앤디 그레이 | 14 | ||||
2007-08 | 46 | 16 | 14 | 16 | 60 | 67 | 62 | 13위 | 3회전 탈락 | 3회전 탈락 | 앤디 그레이 | 13 | ||||
2008-09 | 46 | 21 | 13 | 12 | 72 | 60 | 76 | 5위 | 5회전 탈락 | 준결승 탈락 | 마틴 페테르손 | 19 | ||||
2009-10 | 프리미어리그 | 38 | 8 | 6 | 24 | 42 | 82 | 30 | 18위 | 4회전 탈락 | 3회전 탈락 | 스티븐 플레처 | 12 | |||
2010-11 | 챔피언십 | 46 | 18 | 14 | 14 | 65 | 61 | 68 | 8위 | 5회전 탈락 | 4회전 탈락 | 크리스 이글스 제이 로드리게스 | 15 | |||
2011-12 | 46 | 17 | 11 | 18 | 62 | 61 | 58 | 13위 | 3회전 탈락 | 4회전 탈락 | 제이 로드리게스 | 21 | ||||
2012-13 | 46 | 16 | 13 | 17 | 62 | 60 | 61 | 11위 | 3회전 탈락 | 3회전 탈락 | 찰리 오스틴 | 28 | ||||
2013-14 | 46 | 26 | 15 | 5 | 72 | 37 | 93 | 2위 | 3회전 탈락 | 4회전 탈락 | 대니 잉스 | 26 | ||||
2014-15 | 프리미어리그 | 38 | 7 | 12 | 19 | 28 | 53 | 33 | 19위 | 3회전 탈락 | 2회전 탈락 | 대니 잉스 | 11 | |||
2015-16 | 챔피언십 | 46 | 26 | 15 | 5 | 72 | 35 | 93 | 1위 | 4회전 탈락 | 1회전 탈락 | 앙드레 그레이 | 23 | |||
2016-17 | 프리미어리그 | 38 | 11 | 7 | 20 | 39 | 55 | 40 | 16위 | 5회전 탈락 | 2회전 탈락 | 샘 보크스 | 12 | |||
2017-18 | 38 | 14 | 12 | 12 | 36 | 39 | 54 | 7위 | 3회전 탈락 | 3회전 탈락 | 크리스 우드 | 10 | ||||
2018-19 | 38 | 11 | 7 | 20 | 45 | 68 | 40 | 15위 | 4회전 탈락 | 3회전 탈락 | UEFA 유로파 리그 | 플레이오프 탈락 | 애슐리 반스 크리스 우드 | 13 | ||
2019-20 | 38 | 15 | 9 | 14 | 43 | 50 | 54 | 10위 | 4회전 탈락 | 2회전 탈락 | 크리스 우드 | 14 | ||||
2020-21 | 38 | 10 | 9 | 19 | 33 | 55 | 39 | 17위 | 5회전 탈락 | 4회전 탈락 | 크리스 우드 | 12 | ||||
2021-22 | 38 | 7 | 14 | 17 | 34 | 53 | 35 | 18위 | 3회전 탈락 | 4회전 탈락 | 맥스웰 코르네 | 9 | ||||
2022-23 | 챔피언십 | 46 | 29 | 14 | 3 | 87 | 35 | 101 | 1위 | 8강 탈락 | 4회전 탈락 | 네이선 테일러 | 17 | |||
2023-24 | 프리미어리그 | 38 | 5 | 9 | 24 | 41 | 78 | 24 | 19위 | 3회전 탈락 | 4회전 탈락 | 야콥 브룬 라르센 | 7 | |||
2024-25 | 챔피언십 | 46 | 위 |
2. 1. 창단 초기와 첫 번째 주요 우승 (1882-1946)
번리 FC는 1882년 5월 18일, 럭비 팀인 번리 로버스 선수들에 의해 창단되었다.[2] 이들은 지역 스포츠 클럽들이 축구로 전환하는 추세에 따라 축구로 종목을 변경했다.[2] 며칠 후, 팀 이름에서 '로버스'가 삭제되었다.[2] 1883년, 번리는 아마추어 대회인 닥터 딘스 컵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3]그 해 말, 번리는 프로로 전환하고 스코틀랜드 선수들을 영입했다. 프로 선수 영입을 금지했던 FA와 FA컵 참가를 거부했다.[4] 1884년, 번리는 FA에 대항하는 영국 축구 협회(BFA) 결성을 주도했다.[4] 1885년, FA가 프로 선수 허용으로 규칙을 변경하자, 번리는 1885-86 시즌에 FA컵에 처음 출전했다.[4][5]
1886년 10월, 터프 무어는 왕족이 방문한 최초의 프로 구장이 되었다. 앨버트 빅터 왕자가 번리와 볼턴 원더러스의 친선경기를 관람했다.[3]

번리는 1888-89 시즌에 풋볼 리그를 창립한 12개 팀 중 하나였다.[6] 두 번째 경기에서 윌리엄 테이트가 3골을 기록하며 리그 최초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번리의 첫 승리를 이끌었다.[6] 1889-90 시즌에는 지역 라이벌 블랙번 로버스를 꺾고 첫 랭커셔 컵을 우승했다.[7]
번리는 1896-97 시즌에 처음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35] 다음 시즌 2부 리그에서 우승하며 승격했다. 1897-98 시즌에는 30경기 중 단 두 경기만 패배하여 테스트 경기를 통해 승격했다. 1부 리그 클럽인 스토크와의 마지막 경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두 팀 모두 상위 리그 진출을 위해 무승부가 필요했기 때문에 경기는 0-0으로 끝났고, "골을 시도하지 않은 경기"라는 별명이 붙었다.[8]
번리는 1899-1900 시즌에 다시 강등되었고, 골키퍼 잭 힐만이 노팅엄 포레스트 선수에게 뇌물을 주려 한 승부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9] 이는 축구 역사상 초기의 승부 조작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10]
1902-03 시즌에는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재선출되었다.[17][11]

1909년, 해리 윈들이 회장으로 임명되면서 클럽의 재정 상황이 개선되었다.[12] 1910년, 존 호워스 감독은 클럽의 색상을 애스턴 빌라의 클라레와 파란색으로 변경했다.[13]
1912-13 시즌, 1부 리그로 승격했고, 1914 FA컵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꺾고 첫 주요 우승을 차지했다.[35] 버트 프리먼이 유일한 골을 기록했고, 번리는 한 시즌에 5개의 1부 리그 팀을 격파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 주장 토미 보일은 조지 5세에게 직접 트로피를 받았다.[14]
1919-20 시즌에는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15] 1920-21 시즌에 첫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35] 번리는 첫 3경기를 모두 패배했지만, 이후 30번의 리그 경기에서 무패를 기록하며 잉글랜드 기록을 세웠다.[16]
1931-32 시즌에는 2점 차로 강등을 면했다.[17][18]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는 리그에서 중위권을 유지했다.[17]
2. 2. 발전과 황금기 (1946-1976)
번리는 1946-47 시즌 풋볼 리그에서 전후 첫 번째 시즌에 2부 리그로 승격했고, 1947 FA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찰턴 애슬레틱에게 연장전 끝에 패했다.[19] 이 팀의 수비는 42번의 리그 경기에서 단 29골만을 내주며 "철의 장막"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9]1954년 앨런 브라운이 감독으로 임명되었고,[20] 1년 뒤 밥 로드가 회장으로 임명되었다.[25] 이들의 재임 기간 동안 클럽은 가장 진보적인 클럽 중 하나가 되었다.[21][22] 번리는 훈련장을 목적으로 건설한 최초의 팀 중 하나였으며, 가스소프에 훈련장을 건설했다.[25][23] 또한 젊은 유소년 선수들을 많이 육성하는 정책과 스카우트 시스템으로 명성을 얻었다.[21]

1958년, 번리 선수 출신인 해리 포츠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26] 그의 스쿼드는 주로 주장인 지미 아담슨과 팀의 플레이메이커인 지미 맥로이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24] 포츠는 당시 유행하지 않았던 4-4-2 포메이션을 자주 사용했고, 토탈 풋볼 스타일을 도입했다.[25][26]
번리는 1959-60 시즌에 두 번째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35] 이들은 마지막 경기가 치러질 때까지 순위표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27] 스쿼드를 구성하는데 13000GBP의 이적료가 들었는데, 1950년 맥로이 영입에 8000GBP, 1959년 레프트 백 알렉스 엘더 영입에 5000GBP가 사용되었다. 나머지 선수들은 유스 아카데미 출신이었다.[21] 인구 8만 명의 번리 타운은 잉글랜드 1부 리그 챔피언을 배출한 가장 작은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21] 그들은 시즌이 끝난 후 국제 축구 리그에서 잉글랜드를 대표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는 최초의 현대적인 국제 미국 축구 토너먼트였다.[29]
다음 시즌, 번리는 1960–61 유러피언컵에서 처음으로 유럽 대회에 참가했다. 그들은 첫 번째 라운드에서 전 결승 진출팀인 랭스를 꺾었지만, 8강에서 함부르크 SV에게 패했다.[30] 팀은 1961–62 1부 리그에서 신생팀 입스위치 타운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1962 FA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토트넘 홋스퍼에게 패했다. 그러나 아담슨은 FW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맥로이가 2위를 차지했다.[31]
풋볼 리그의 최고 임금은 1961년에 폐지되었고, 이는 번리와 같은 작은 도시의 클럽이 더 큰 도시의 팀들과 재정적으로 경쟁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했다.[25][32] 1963년 맥로이가 스토크 시티로 떠난 것과[34] 1964년 아담슨의 은퇴 역시 클럽의 전력에 타격을 입혔다.[34] 그러나 번리는 10년 동안 1부 리그 자리를 유지했으며, 1965-66년 3위를 기록하여 1966–67 인터시티스 페어스컵에 진출했다.[35]
포츠는 1970년에 아담슨으로 감독이 교체되었다. 아담슨은 자신의 스쿼드를 "70년대의 팀"이라고 칭했지만, 1970–71년에 강등되면서 하락세를 막을 수 없었다.[36] 번리는 1972-73년에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973 FA 자선 실드에 초청을 받았다.[37]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승리했다.[38] 1975년, 팀은 서던 리그에 있던 윔블던이 터프 무어에서 1-0으로 승리하면서 역대 FA컵에서 가장 큰 이변 중 하나의 희생자가 되었다.[39] 아담슨은 1976년 1월에 클럽을 떠났고, 그해 1부 리그에서 강등되었다.[40] 이 기간 동안 홈 관중 감소와 부채 증가는 번리가 마틴 돕슨과 레이튼 제임스와 같은 스타 선수를 팔도록 강요했고, 이는 급격한 쇠퇴를 야기했다.[41]
2. 3. 몰락 위기와 회복 (1976-2020)
번리는 1979-80 시즌에 처음으로 풋볼 리그 3부로 강등되었다.[35] 이후 브라이언 밀러 감독의 지휘 아래, 1981-82 시즌에 챔피언 자격으로 2부 리그로 복귀했으나, 1년 만에 다시 강등되었다.[35] [42]이후 번리는 감독 교체를 통해 성공을 꾀했다. 1983년 초 브라이언 밀러가 프랭크 캐스퍼로 교체되었고, 1983-84 시즌 전에는 존 본드로, 다시 1시즌 후에는 존 벤슨으로 교체되었다.[42] 존 본드는 프랭크 힐 (1948-1954) 이후 번리에서 선수 경력이 없는 첫 번째 감독이었으나, 번리의 부채를 늘리는 비싼 선수 영입과 리 딕슨, 브라이언 로스, 트레버 스티븐 등 젊은 선수 판매로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43]
1984-85 시즌 마지막 날, 번리는 처음으로 풋볼 리그 4부로 강등되었고, 1986-87 시즌 마지막 날 오리엔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풋볼 컨퍼런스로의 강등을 간신히 면했다.[44]

1988년, 번리는 울버햄튼 원더러스와 어소시에이트 멤버스 컵 결승전에서 맞붙었지만 2-0으로 패했다. 이 경기는 8만 명이 참석하여 4부 리그 팀 간의 경기에서 기록적인 관중 수를 기록했다.[45]
1991-92 시즌, 지미 멀렌 감독 하에 번리는 4부 리그에서 우승했다. 그는 1991년 10월에 캐스퍼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부임하여 첫 9번의 리그 경기에서 승리했다.[46] 이로써 번리는 울버햄튼 원더러스에 이어 잉글랜드 축구 리그 시스템의 4개 프로 리그에서 모두 우승한 두 번째 클럽이 되었다.[47][48]
1993-94 시즌, 번리는 2부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여 2부 리그로 승격했으나,[35] 1시즌 만에 강등되었다.[35] 1997-98 시즌에는 플리머스 아가일과의 마지막 날 승리로 4부 리그 강등을 면했다.[49]
스탠 테르넷 감독 하에 번리는 1999-2000 시즌 2위를 기록하며 2부 리그로 승격했다.[50] 2002년 초, ITV 디지털의 붕괴로 인한 재정 문제는 클럽을 행정 절차 직전까지 몰고 갔다.[51] 테르넷은 여러 임대 선수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들로 구성된 스쿼드로 강등을 면한 후 2004년에 해고되었다.[52]
오웬 코일 감독이 이끈 2008-09 시즌, 번리는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꺾고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며 33년 만에 최상위 리그로 복귀했다.[53] 또한 25년 만에 처음으로 리그 컵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두 번째 경기 마지막 몇 분 동안 합계에서 토트넘에 패했다.[35][54]

승격으로 번리 타운은 프리미어 리그 클럽을 유치하는 가장 작은 타운 중 하나가 되었다.[55][56] 번리는 시즌 초반 4번의 홈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57] 그러나 코일은 2010년 1월 지역 라이벌 볼턴 원더러스 감독으로 부임하기 위해 클럽을 떠났고, 전 번리 선수인 브라이언 로스로 교체되었지만 팀의 경기력은 급락하여 한 시즌 만에 강등되었다.[58]
션 다이치는 2012년 10월에 감독으로 임명되었다.[59] 그는 예산과 소규모 스쿼드의 어려움 속에서도 2013-14 시즌에 번리를 다시 프리미어 리그로 이끌었다.[60] 팀은 한 시즌 만에 강등되었지만, 2015-16 시즌에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23경기 무패 행진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복귀했다.[35][61]
2017년, 클럽은 가스포스를 대체하는 반필드 훈련 센터 건설을 완료했으며, 다이치는 훈련장 설계에 참여했다.[23] 번리는 2017-18 시즌에 7위를 기록하여 2018-19 UEFA 유로파 리그에 진출, 51년 만에 유럽 축구 무대에 복귀했다.[62] 그러나 팀은 플레이오프 라운드에서 그리스 클럽 올림피아코스에 패하며 조별 리그 진출에는 실패했다.[63]
2020년 12월, 미국의 투자 회사인 ALK Capital은 번리의 지분 84%를 1.7억파운드에 인수했다.[64] 이는 지역 사업가와 번리 팬이 아닌 다른 사람이 클럽을 운영하는 첫 번째 사례였다.[65]
2. 4. 외국인 구단주 시대 (2020-현재)
2020년 12월, 미국의 투자 회사 ALK Capital은 1.7억파운드에 번리의 지분 84%를 인수했다.[64] 이는 지역 사업가와 번리 팬이 아닌 다른 사람이 클럽을 운영하는 첫 번째 사례였다.[65] 2021-22 시즌에 번리는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여 18위로 마감한 후 EFL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었다.[66] 2022년 6월, 벨기에 출신 뱅상 콩파니가 번리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영국 제도 외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클럽을 이끌게 되었다.[67] 그는 부임 후 몇 달 동안 예산을 들여 주로 젊고 외국인 선수 16명을 영입하며 선수단을 재건했다. 콩파니는 또한 점유율 중심의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했다.[68] 번리는 지역 라이벌 블랙번 로버스와의 1-0 승리 후 EFL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기 전, 7경기를 남겨두고 챔피언십 기록으로 프리미어 리그로의 승격을 확정지었다.[69][70] 다음 시즌에 번리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다시 강등되었고, 클럽 최저 점수인 24점을 기록하며 19위로 마감했다.[71][72] 콩파니는 주로 경험이 없는 선수들을 영입하여 경쟁력이 없는 선수단을 구성했고, 그의 "전술적 순진함"과 "고집"으로 비판을 받았다.[73]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콩파니는 1019.9999999999999만파운드의 이적료를 받고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여 역사상 가장 비싼 감독 중 한 명이 되었다.[74][75]3. 클럽 정체성
번리는 창단 초기부터 다양한 유니폼 디자인과 색상을 사용했다. 처음 8년 동안은 번리 로버스의 색상인 파란색과 흰색을 다양하게 조합했다.[76] 1890-91 시즌에는 파란색 셔츠를 사용하다가 흰색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후 클라레와 앰버색 줄무늬, 검은색과 앰버색 조합, 분홍색과 흰색 줄무늬 등 다양한 디자인을 거쳤다. 1897년부터 1900년까지는 빨간색, 1900년부터 1910년까지는 녹색 셔츠를 착용했다.
1910년, 번리는 당시 풋볼 리그 챔피언이었던 아스톤 빌라에 경의를 표하며 클라레와 파란색으로 색상을 변경했다. 번리 위원회와 감독은 이 색상이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76] 1930년대 후반과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흰색 셔츠를 입기도 했지만, 1946년 클라레와 파란색을 공식 색상으로 재등록했다.[76]
번리 유니폼은 1975년까지 지역 회사에서 제작되었으며, 엄브로가 처음으로 셔츠에 로고를 넣었다. 이후 다양한 키트 제조업체와 셔츠 스폰서를 거쳤다. 1982년 POCO가 첫 번째 키트 스폰서였고, 2017년 모바일 게임 ''골프 클레시''가 첫 번째 소매 스폰서가 되었다.[77][78]
번리가 문장을 처음 사용한 것은 1887년 12월로, 당시 유니폼에 왕실 문장을 부착했다.[77] 이는 1886년 10월 앨버트 빅터 왕자가 터프 무어에서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를 관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왕족이 프로 축구 경기를 관람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3] 1914년 FA컵 결승전에서 조지 5세 국왕이 경기를 관람했을 때도 유니폼에 왕실 문장이 다시 등장했다.[14][77]
현재 구단 배지는 도시 문장을 기반으로 한다.[83] 문장 상단의 황새는 번리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스타키 가문을 의미한다. 황새는 입에 중세 시대에 번리를 소유했던 드 레이시 가문의 레이시 매듭을 물고 있다. 황새는 언덕 위에 서 있으며, 도시의 면화 유산을 나타내는 면화 식물이 있다. 그 아래의 손은 도시의 모토인 "진실을 지켜라"를 나타내며, 이는 타운리 가문에서 유래되었다. 두 마리의 꿀벌은 도시의 근면한 윤리를 나타내고, 사자는 왕족을 상징한다. 갈매기표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브런 강을 의미한다.[83][80]
3. 1. 유니폼과 색상
번리는 창단 초기 8년 동안 파란색과 흰색을 조합한 다양한 유니폼을 사용했다.[76] 1890-91 시즌에는 파란색 셔츠를 입었다가 흰색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후 클라레와 앰버색 줄무늬, 검은색과 앰버색 조합, 분홍색과 흰색 줄무늬 셔츠 등 다양한 디자인을 거쳤다. 1897년부터 1900년까지는 빨간색, 1900년부터 1910년까지는 녹색 셔츠를 착용했다. 1910년, 번리는 당시 풋볼 리그 챔피언이었던 아스톤 빌라에 경의를 표하며 클라레와 파란색으로 색상을 변경했다. 번리 위원회와 감독은 이 색상이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76] 1930년대 후반과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흰색 셔츠를 입기도 했지만, 1946년 클라레와 파란색을 공식 색상으로 재등록했다.[76]1975년까지 번리 유니폼은 지역 회사에서 제작되었으며, 엄브로가 처음으로 셔츠에 로고를 넣었다. 이후 다양한 키트 제조업체와 셔츠 스폰서를 거쳤다. 1982년 POCO가 첫 번째 키트 스폰서였고, 2017년에는 모바일 게임 ''골프 클레시''가 첫 번째 소매 스폰서가 되었다.[77][78]
3. 2. 문장
번리가 문장을 처음 사용한 것은 1887년 12월로, 당시 유니폼에 왕실 문장을 부착했다.[77] 이는 1886년 10월 앨버트 빅터 왕자가 터프 무어에서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를 관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왕족이 프로 축구 경기를 관람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3] 구단은 왕실 문장이 장식된 파란색 띠가 있는 흰색 유니폼 세트를 받았다. 이 문장은 1895년까지 유니폼에 정기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이후 사라졌다.[77]1914년 FA컵 결승전에 조지 5세 국왕이 경기를 관람했을 때, 다시 유니폼에 왕실 문장이 등장했다.[14][77] 1934-35 FA컵 준결승과 1947 FA컵 결승전에서는 번리의 문장을 착용했다.[77][79]
1960년 1부 리그에서 우승한 후, 번리는 유니폼에 도시의 문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69년부터 1975년까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BFC" 글자를 새겼고, 1975년에는 금색으로 된 수평 "BFC" 문자를 채택했다.[77] 1979년부터는 도시와 구단의 요소를 담은 디자인된 배지를 홈 유니폼에 사용했으며,[77] 1983년에는 흰색으로 된 간단한 수평 "B.F.C."를 채택했다.[77][83] 1987년, 구단은 1979년부터 1983년까지 사용했던 문장을 다시 사용했다.
2009년, 1959-60 시즌 1부 리그 우승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60년부터 1969년까지 사용했던 로고를 다시 도입했다. 다음 시즌에는 라틴어 모토 "Pretiumque et Causa Laboris|우리의 노력의 대가와 원인la"가 "Burnley Football Club"이라는 문구로 대체되었다.[77][80] 2023년, 번리는 요소들을 흰색으로 칠하고 클라렛 방패에 배치했으며,[81] 2024-25 시즌부터 문장은 구단의 홈 유니폼에 나타났다.[82]
현재 구단의 배지는 도시의 문장을 기반으로 한다.[83] 문장 상단의 황새는 번리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스타키 가문을 의미한다. 황새는 입에 중세 시대에 번리를 소유했던 드 레이시 가문의 레이시 매듭을 물고 있다. 황새는 언덕 위에 서 있으며, 도시의 면화 유산을 나타내는 면화 식물이 있다. 그 아래의 손은 도시의 모토인 "진실을 지켜라"를 나타내며, 이는 타운리 가문에서 유래되었다. 두 마리의 꿀벌은 도시의 근면한 윤리를 나타내고, 사자는 왕족을 상징한다. 갈매기표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브런 강을 의미한다.[83][80]
4. 경기장
번리 FC는 1883년 2월부터 터프 무어에서 홈 경기를 치렀으며, 이는 칼더 베일에 있던 원래 부지를 대체한 것이다.[84] 터프 무어 부지는 1843년 번리 크리켓 클럽이 이 지역으로 이전하면서부터 스포츠 시설로 사용되었다.[85][86] 1883년, 번리 크리켓 클럽은 번리 FC를 크리켓 경기장 인근의 구장으로 초청했다.[84] 두 클럽은 그 이후로 그곳에 머물렀으며, 랭커셔의 라이벌 프레스턴 노스 엔드만이 그들의 경기장인 딥데일을 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했다.[84]
원래 경기장은 단지 경기장으로만 구성되었으며, 최초의 관람석은 1885년에 지어졌다.[85] 1888년 터프 무어에서 열린 첫 번째 리그 경기에서 번리는 볼턴 원더러스를 4-1로 꺾었으며, 프레드 폴란드가 경기장에서 첫 번째 리그 골을 기록했다.[6] 1910년대에 회장 해리 윈들에 의해 터프 무어의 수용 인원은 50,000명으로 증가했다.[14] 1922년 터프 무어에서 FA컵 준결승전이 단독으로 개최되었으며, 허더즈필드 타운 AFC과 노츠 카운티 FC의 경기가 열렸다. 5년 후에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1927–28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경기를 유치하며 유일한 A매치를 개최했다.[87] 제2차 세계 대전 종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경기장의 관중은 평균 20,000~35,000명이었으며, 번리는 1947-48 시즌 1부 리그에서 33,621명으로 클럽 역대 평균 관중 기록을 세웠다.[88]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은 1924년 FA컵 3라운드에서 허더즈필드 타운을 상대로 54,775명의 관중이 참석하면서 세워졌다.[89] 1960년 FA컵 5라운드 재경기에서 브래드포드 시티 AFC를 상대로 공식 관중 수는 52,850명이었으나, 일부 게이트가 부서지면서 집계되지 않은 많은 팬들이 경기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90]
터프 무어는 21,944명의 수용 인원을 가지고 있으며, 노스 스탠드(구 롱사이드), 지미 맥길로이 스탠드(구 비 홀 엔드), 밥 로드 스탠드, 홈 및 원정 팬을 위한 크리켓 필드 스탠드 등 4개의 스탠드로 구성되어 있다.[84][91][92] 1974년까지 터프 무어의 경기장은 경사면이 있었으나, 경사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기장 높이를 올렸다.[84] 1990년대 중반, 테일러 보고서의 결과로 롱사이드와 비 홀 엔드 테라스가 전 좌석 스탠드로 교체되면서 경기장은 추가적인 개보수를 거쳤다.[93] 2019년, 클럽은 접근 가능한 경기장 가이드라인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지미 맥길로이 스탠드와 노스 스탠드 및 밥 로드 스탠드 사이에 장애가 있는 홈 서포터를 위한 두 개의 코너 스탠드를 건설했다.[94][95]
5. 서포터와 라이벌
번리의 주요 라이벌은 블랙번 로버스이며, 두 팀 간의 경기는 이스트 랭커셔 더비라고 불린다. 이 더비는 두 클럽이 모두 속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방직 공장 도시 출신 팀 간의 경기라는 점에서 "코튼 밀스 더비"라고도 불린다.[118][119] 두 팀은 모두 풋볼 리그의 창립 멤버이며, 1부 리그와 FA컵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118] 두 클럽은 약 22.53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지리적으로도 가깝고,[119]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를 이어왔다. 최초의 경쟁 경기는 1888년 풋볼 리그 경기였지만,[120] 그보다 4년 전, 두 팀은 친선 경기로 처음 만났으며, 당시 경기는 "상당한 자존심이 걸린 경기"였다.[121] 번리가 블랙번을 상대로 44승 41패로 더 나은 상대 전적을 가지고 있다.[120]
번리의 가장 가까운 지리적 라이벌은 애크링턴 스탠리 FC이지만, 과거에 해체된 애크링턴 FC와는 달리 같은 수준에서 경쟁한 적이 없어 두 팀 간에는 특별한 라이벌 관계가 없다.[122] 그 외 다른 라이벌로는 인근 클럽인 블랙풀 FC, 볼턴 원더러스 FC,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가 있다.[123] 번리는 또한 브래드퍼드 시티 AFC 및 리즈 유나이티드 FC와 장미 전쟁 라이벌 관계를 공유한다.[124][125]
5. 1. 서포터
번리의 서포터들은 주로 이스트 랭커셔와 웨스트 요크셔에서 온다.[96] 이 클럽은 인구당으로 따졌을 때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팀 중 하나이며,[97] 약 78,000명의 주민이 있는 도시에서 프리미어 리그 평균 관중 수는 약 21,000명이다.[98][99] 번리는 영국 전역과 해외에 수많은 서포터 클럽을 보유하고 있다.[100]이 클럽의 팬들은 1990년대부터 네덜란드 팀 헬몬트 스포르트의 서포터들과 오랫동안 우정을 유지해 왔다. 여러 번리와 헬몬트 팬들은 정기적으로 해외 여행을 통해 서로의 경기를 방문한다.[101] 2022–23 시즌과 2023–24 시즌 동안 헬몬트 스포르트는 번리에 대한 경의를 표하여 클라렛과 블루 색상의 원정 유니폼을 채택했다.[102][103]
1970년대 초부터 자주 불려온 응원가는 "No Nay Never"로, 이는 라이벌 블랙번 로버스를 비방하는 가사가 포함된 The Wild Rover라는 노래를 개사한 것이다.[104] 1980년대 초, 훌리건 집단인 자살 특공대가 번리의 팬들 사이에서 등장했다.[105] 이 단체는 나중에 2006년 훌리건 다큐멘터리 시리즈 ''The Real Football Factories''에 출연했다.[106] 2011년, 12명의 단원들은 2009년 블랙번 로버스 서포터들과의 대규모 사건으로 총 3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107] 이 단체는 판결 이후 해산되었다.[108]
주목할 만한 번리 팬으로는 터프 무어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던 축구 개척자 지미 호건, 클럽과 함께 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한 언론인 앨러스테어 캠벨, 그리고 번리 티켓 사무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했던 크리켓 선수 제임스 앤더슨 등이 있다.[109][110][111] 찰스 3세 국왕도 이 클럽의 서포터이며,[112]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추기경 윌프리드 네이피어도 마찬가지다.[113]
2019년, 번리 팬 스콧 컨리프는 "축구에서 다양성, 포용성 및 접근성을 강조하는 역할 모델로서의 그의 공헌"을 인정받아 UEFA로부터 #EqualGame 상을 수상했다. 그는 번리의 2018–19 시즌 동안 모든 원정 프리미어 리그 경기장을 달려 번리 프리미어 리그 클럽 커뮤니티 트러스트와 번리 지역 사회 프로젝트를 위해 55000GBP 이상을 모금했다.[114][115]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홈 경기에서 인기 있는 음료는 "Béné & Hot"로, 프랑스 리큐어 베네딕틴에 뜨거운 물을 채워 넣은 것이다. 이스트 랭커셔 연대 군인들은 전쟁 중 이 음료의 발상지인 노르망디의 페캉에 주둔하면서 이 음료에 대한 취향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참호에서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뜨거운 물과 함께 마셨고, 살아남은 군인들은 나중에 리큐어를 가지고 이스트 랭커셔 지역으로 돌아왔다. 매 홈 경기마다 30병 이상이 판매되어, 이 클럽은 베네딕틴 판매량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클럽 중 하나가 되었으며, 터프 무어는 이를 판매하는 유일한 영국 축구 경기장이다.[116][117]
5. 2. 라이벌
번리의 주요 라이벌은 블랙번 로버스이며, 두 팀 간의 경기는 이스트 랭커셔 더비라고 불린다. 이 더비는 두 클럽이 모두 속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18][119] 방직 공장 도시 출신 팀 간의 경기라는 점에서 "코튼 밀스 더비"라고도 불린다.[118][119] 두 팀은 모두 풋볼 리그의 창립 멤버이며, 1부 리그와 FA컵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118]두 클럽은 약 22.53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지리적으로도 가깝고,[119]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를 이어왔다. 최초의 경쟁 경기는 1888년 풋볼 리그 경기였지만,[120] 그보다 4년 전, 두 팀은 친선 경기로 처음 만났으며, 당시 경기는 "상당한 자존심이 걸린 경기"였다.[121] 번리가 블랙번을 상대로 44승 41패로 더 나은 상대 전적을 가지고 있다.[120]
번리의 가장 가까운 지리적 라이벌은 애크링턴 스탠리 FC이지만, 과거에 해체된 애크링턴 FC와는 달리 같은 수준에서 경쟁한 적이 없어 두 팀 간에는 특별한 라이벌 관계가 없다.[122]
그 외 다른 라이벌로는 인근 클럽인 블랙풀 FC, 볼턴 원더러스 FC,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가 있다.[123] 번리는 또한 브래드퍼드 시티 AFC 및 리즈 유나이티드 FC와 장미 전쟁 라이벌 관계를 공유한다.[124][125]
6. 선수
번리 FC는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된 축구 클럽이다. 선수단은 1군 선수 명단과 임대 선수 명단으로 구성되어 있다.[126] 조시 브라운힐이 주장을 맡고 있다.
번리는 UEFA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경력이 있다.
6. 1. 1군 선수 명단 (2024년 9월 10일 기준)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1 | GK | 제임스 트래퍼드 | |
3 | DF | 슈란디 삼보 | |
4 | DF | 조 워럴 | |
5 | DF | 막심 에스테브 | |
6 | DF | CJ 이간-라일리 | |
7 | FW | 제레미 사르미엔토 | |
8 | MF | 조시 브라운힐 | |
9 | FW | 제이 로드리게스 | |
10 | FW | 마누엘 벤슨 | |
11 | FW | 제이든 앤서니 | |
12 | DF | 바시르 험프리스 | |
14 | DF | 코너 로버츠 | |
15 | FW | 네이선 레드먼드 | |
16 | DF | 존 이간 | |
17 | FW | 라일 포스터 | |
18 | DF | 야우마르 에크달 | |
19 | FW | 지안 플레밍 | |
20 | GK | 에티엔 그린 | |
21 | MF | 애런 램지 | |
23 | DF | 루카스 피레스 | |
24 | MF | 조시 컬렌 | |
28 | MF | 한니발 메브리 | |
29 | MF | 조시 로랑 | |
30 | FW | 루카 콜레오쇼 | |
31 | MF | 마이크 트레소르 | |
32 | GK | 바츨라프 흘라드키 | |
36 | DF | 요르단 바이어 | |
37 | FW | 안드레아스 혼톤지 | |
39 | DF | 오웬 도드슨 | |
42 | MF | 한-노아 마셍고 | |
44 | DF | 하네스 델크루아 | |
48 | FW | 에녹 아제이 |
6. 2. 임대 선수 명단
포지션 | 이름(영어) | 이름(원어) | 국적 | 비고 |
---|---|---|---|---|
FW | 제키 암두니 | Zeki Amdouni|제키 암두니프랑스어 | 스위스 | 벤피카로 임대 |
FW | 다르코 추르리노프 | Дарко Чурлинов|다르코 추를리노프mk | 북마케도니아 | 야겔로니아 비아위스토크로 임대 |
FW | 마이클 오바페미 | Michael Obafemi|마이클 오바페미ga | 아일랜드 | 플리머스 아가일로 임대 |
FW | 다라 코스텔로 | Dara Costelloe|다라 코스텔로ga | 아일랜드 | 애크링턴 스탠리로 임대 |
7. 경영진
번리 FC는 1897년에 유한 회사로 법인화되었으며,[128] 2020년까지 지역 사업가와 서포터들이 구단을 운영했다.[65] 2020년 12월, 미국의 경영 컨설팅 회사 ALK 캐피탈의 스포츠 투자 부문인 Velocity Sports Partners(VSP)가 1.7억파운드에 번리의 지분 84%를 인수하면서, ALK 캐피탈의 매니징 파트너인 앨런 페이스가 마이크 갈릭을 대신하여 구단 회장이 되었다.[64][65] ALK는 인수 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입했고, 그 부채는 구단으로 이전되었다. 이러한 차입매수로 인해 번리는 무부채 상태에서 약 1억파운드의 부채를 안게 되었고, 이자율은 약 8%였다.[129][130]
2023년 5월에는 은퇴한 NFL 디펜시브 엔드인 J. J. 와트와 그의 아내이자 전 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인 케일리아 와트가 소액 투자자로 발표되었고,[131] 2023년 8월에는 유튜브 그룹 듀드 퍼펙트도 구단의 소액 투자자가 되었다.[132]
직위 | 이름 |
---|---|
회장 | 앨런 페이스 |
이사 | 데이브 체켓츠 안토니오 다빌라 스튜어트 헌트 마이크 스미스 블라드 토르고브니크 |
7. 1. 코칭 스태프
마이크 잭슨코너 킹
케르스텐 쿨
엘리엇 타이베보